20241010 종말
세상이 이런 식으로 멸망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땅이 꺼지고 운석이 떨어지는 등 물리적 손실이 동반하는 종말보다는 비현실적이라 사람들은 종종 종말의 존재를 잊었다. 마치 외출 전 켜둔 형광등처럼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본격적으로 이변을 감지한 것은 세계 곳곳에서 본인이 잊혔노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지 1년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본인이 잊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자, 학계에서는 집단 정신병의 일종으로 보고 그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중세에 발병한 무도병과 같은 것이 아니냐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모순은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다. 본인이 유명 연예인이었다고 말하며 방송국을 찾아온 사람은 그 방송국에 보관된 영상 기록물들을 증거로 삼았다. 모두 그 사람이 진행하던 TV쇼의 영상이었다. 뉴스에서는 이상 현상을 보도하며 전 인류적인 뇌 기능 퇴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불확실한 인터뷰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세상이 한 사람을 잊는 것이 가능한가? 사람들은 매일 논의했고 토론했고 연구했지만 아무도 명확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잊었다. 국가에 개인정보가 잘 등록된 곳.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시스템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을 사람들끼리는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들은 기록으로 친인척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일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국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물망초 쉼터를 운영했다. 가족 곁에 있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한 쉼터였다. 그들은 대부분 쉼터에서 머물며 서로 관계를 쌓았으나 그나마도 열흘 남짓한 시간 안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잊었다. 존재를 잊는 것은 새로 쌓는 기억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록으로 관계를 습득했다. 기묘하고 처절했다. 인간이 '인간人間'이며 사회적 동물이기에 생기는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