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사장은 문 밖에서 애원했고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기 위해 다가가자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고 낡고 더러운 유리문 바깥에는 검붉은 얼룩이 번졌다. 그렇게 끔찍한 것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아직도 그것이 꿈은 아닌지 고민할 때가 있다.
열쇠는 그에게 있었고 사장은 급하게 쫓기는 통에 잃어버린듯 했다. 나는 그냥 문을 걸어 잠구고 먼지 쌓인 블라인드를 내린다. 죽었을까 죽었겠지 한참이나 문을 열지 못하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두려웠다. 부득이했던 상황이지만 그렇지만 어쩌면 내가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지키려다 죽어버린 사람을 보면 안도할 수 있었다. 그것 봐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어...
세상이 거대한 영화라면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 거야.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죽었는지 무엇을 꿈꾸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엑스트라라면 몰라. 이렇게 긴긴 생각을 하는 이유라면 침묵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 정확히는 적막함 속에서 현실을 인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패한 것들이 다리를 끌며 움직이고 삶을 갈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 소리를. 그 어떤 것도. 아. 나는 그냥 그때 문을 열고 죽었어야 했을까.
부패한 살점이 움직이는 시대에 얼마나 좋은 일이 있겠냐마는 입 발린 말로도 '좋아'보인다고는 할 수 없는 창백한 얼굴로 그늘에 숨곤 하는 사람이었다. 숨소리만으로도 그들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에 긍정적인 소리라곤 뱉으면 죽어버리는 사람처럼 부정적으로 굴었다. 다행인 것은 긍정도 부정도 대체로 입 바깥으로 내는 법은 없다는 것이고, 다행이지 않은 것은 표정에 그대로 티가 난다는 것이 아닐까. 운이 나쁘면 죽고 운이 좋으면 살아남는 간단한 공식 앞에서 차라리 두려움을 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월에게는 매일매일이 목숨을 건 도박처럼 느껴졌다. 이 카드 뒤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까. 홀수, 혹은 짝수. 혹은 조커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건 도박에서 그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카드 뒷면의 복잡한 무늬를 응시했다.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그러고 싶었지만 이런 세계에도 무정한 해는 떠올랐다. 선택하지 않아도 쥐여지는 것과 함께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정말 '사는' 일인지. 때로는 괴로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다. 죽은 사람보단 산 사람이 덜 비참할 것이다. 아마도.
죽은 이들은 슬퍼할 수도, 죄책감을 가질 수도 없으므로.
때로는 무언가를 참아내는 얼굴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