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Everybody
Are you hanging up your stockings on your wall?
It's the time that every Santa has a ball.
Does he ride a red nosed reindeer?
Do he turn up on his sleigh.
Do the fairies keep him sober for a day?*
…
캐시미어는 1973년에 발매된 크리스마스 노래-독특하게도 이 곡의 장르는 글램 락이었다. 락과 크리스마스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합인지!-를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가사는 '벽에 네 양말을 걸어 두었니?'라는 재치있는 물음으로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얼마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지 어린 캐시는 그 곡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몇 해나 지난 지금까지 이르렀고, 캐시의 삶은 거센 파도며 폭풍을 견뎌내느라 알 수 없는 곳에 닿았어도 취향만큼은 견고히 자신의 성을 지키고 있었다. 툭 터놓고 말하자면 독특한 크리스마스 송을 흥얼거리는 지금은 크리스마스 이브 즈음이었다. 매 년 돌아오는 것을 알지만 매 해가 특별하기를 바라게 되는 날. 크리스마스의 문턱.
캐시미어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라고 한다면 그것은 몇 해 전에 사라진 것으로, 그 시절을 겪을 수 있던 것으로 삶의 행운을 전부 써버린 것이라 믿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현재는 현재이므로, 절대 과거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깨진 유리잔을 붙인다 하더라도 깨지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첫 해에는 그것이 견디지 못할 만큼 서러웠고, 그 다음 해에는 그보단 나았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 해에는 크리스마스를 잊고 살았고, 그 이후에는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의미를 잃어 아무 것도 아닌 날이 된 것도 같았다. 그렇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가장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노래를 잊고, 한 줌 기억도 부러 묻어 외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돌아볼 용기가 생겼다. 적어도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일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진짜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아마도 전자가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캐시는 근사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근사한 저녁 식사를 계획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친구, 런에게 연락을 넣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바빠요?]
답장을 기다린답시고 이것 저것 크리스마스에 쓰던 자그마한 트리며, 각종 장식, 양말, 꼬마 전구,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어있는 상자를 어디선가 찾아내다가, 보내둔 문자가 두서없고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임을 자각하곤 재빨리 덧붙여 보냈다.
[바쁘지 않으면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싶어서 문자 했어요.]
캐시의 고민과는 늘 다른 궤도를 달리는 런은 꼭 본인을 닮은 활기찬 투로 바쁘지 않으며 이브에 방문하겠다는 답장을 남겼다. 정말 이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리고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과거의 흔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캐시라면 더더욱.
각종 과일을 큼직하게 썰어 시나몬 몇개와 와인을 부어 약한 불로 끓이기 위해 올려둔 채로 젖은 수건을 집어든 캐시는 먼지 묻은 물건을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의 '영화'를 찾아낸 것은 뱅쇼가 완성된 이후의 일로, 캐시는 그것을 보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들뜬채 잠이 들었다.
-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분주히 청소를 하는 사이 그토록 고대하던 손님인 런이 찾아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보지 못한 친구처럼 포옹을 나누곤 으례 그러듯 서로가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나누다보니 저녁이 깊어지는 것은 금방이었으므로 캐시는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좀… 많이 식탁에 놓였다. 식탁만 본다면 4인 가족이라고 해도 믿을 양이었다면 짐작이 되는가. 캐시는 그런 식탁을 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런, 저녁 들어요."
차린건 많이 없지만…이라고 예의를 차리는 것도 민망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변명하듯 갑작스러운 옛 이야기를 꺼내려 입술을 달싹였고, 음식을 런에게 덜어준 뒤에 제가 보낸 크리스마스며, 추수감사절, 그 외 많은 명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엇비슷한 기념일의 경험이 오가자 분위기는 쉽게 훈훈해졌다. 이젠 더 이상 나쁜 추억이나 잊고 싶은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겠지. 요리를 잔뜩 한 보람이 있게 런은 양 볼을 빵빵하게 채우며 저녁 식사를 양껏 즐기는 것처럼 보여 캐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때면 이 정도로 차려둬도 금방 배고프다며 보채곤 했어요. 그러면 금방 뭐라도 만들어서 내놓곤 했죠. 팝콘이며 나초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리고 나면 영화를 틀었어요. 매번 같은 영화였는데, 매 크리스마스마다 다 함께 보는 게 의무 같은 느낌이었어요. 의무라고 말하니 조금 딱딱하긴 하지만,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고 말해도 될까요? 우리는 그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대사까지 달달 외우고, 비디오 테이프가 늘어나서 더는 볼 수 없을 때까지 그걸 봤죠. 그걸 못보게 된 이후에는 새 테이프를 샀고,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비디오가 생산되지 않게 된 이후에는 블루레이를 사서 보곤 했어요. 아마 우리는 그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모여서 그 영화를 보는 시간을 사랑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요…."
답지 않게 긴 말을 이어가던 캐시가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런에게 어떤 중대한 결정이나 결심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단호한 말투로,
"그러니까 그 영화를 런이랑 같이 보고 싶어요."
과거의 시간과 다른 것도 알고, 친구들과 런이 다른 것도 알아요. 이런다고 지나간 과거가 돌아오지도, 비슷한 시간을 만들 수도 없다는 걸 알고 말고요. 다만 제가 잃은 크리스마스가 새 의미를 찾겠죠. 제게 의미 있는 것이 런에게도 의미가 있기를 바라지만, 너무 과한 바람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물어 보고 싶었어요. 같이 영화 볼래요?
같이 영화 볼래요?
묻는 캐시미어의 말 끝이 시작과는 달리 망설이듯 기울어졌으나, 런은 언제나 그러하듯, 언제나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답을 건냈다.
지금까지 잘만 웃으며 말해놓고 그 대답에 캐시는 그만 눈시울을 조금 붉히고 말았다. 바보 같은 캐시미어. 그렇지만 캐시는 그런 본인이 더 이상 밉지만은 않았다.
*Slade, Merry Christmas Everybody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