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은 우찬에게 부탁한 별 조각에 보석들을 박을 요량으로 작은 홈을 파는 중이었다. 완벽한 조각에 흠이 될까 걱정도 되었으나 보석을 고정하는 건 본인이니 자신이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연장이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나뭇결을 따라 작은 홈을 만들었다. 중앙에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를 박아야지. 잘 붙으려나? 그런 것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석 박힌 별이라면 충분히 트리 가장 높은 곳에 걸릴 만 할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의 별이라. 꼭 그것을 따러 간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애는 가장 높은 곳의 별을 따러, 에스텔은 가장 낮은 곳의 별을 따러. 이렇게 떨어졌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그런 궁금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마는 오래도록 보지 못한 혈육이 그리워 쓰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잘 지내. 너는 어떻게 지내니? 보고 싶어. 같은, 상투적이며 보편적인 문구에 진심을 담아 보내면 언젠가처럼 웃어줄지도 모른다.
친애하는 나의 쌍둥이 별, 에스펠에게.
안녕, 에스펠.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오랜만이야. 문득 생각해보니 네게 답장이 오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더라고. 여러 달이 지났지? 거긴 많이 바빠? 답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런 모양이지만 말이야. 너도 역시 소원하던 대로 별에 닿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나는 땅의 별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 아직도? 라고 물을 네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그렇지만 들어봐 에스펠, 나는 세상 가장 빛나는 것부터 믿을 수 없이 초라한 것까지 모두 보았단다. 내게만 빛나는 것도 보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보았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내게 물어볼 거야. '그래서 행복하니?' 하고. 그럼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거야. 하지만 네가 없는 나의 행복이 완벽한지는 잘 모르겠어. 다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행복을 누리고 있어. 그리고 현재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러면 네가 걱정하겠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고 말이야! 안심하렴. 이곳에는 별일 없어. 그냥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며 툴툴거릴 네 얼굴이 눈앞에 선하지만, 진짜 앞에 있는 게 아니니까…. 보고 싶어. 에스펠. 소식이라도 전해줘. 크리스마스가 코 앞인데 계획한 건 있니? 뭐가 되었든 너라면 멋진 크리스마스를 준비했겠지. 우리 어린 시절 항상 빌던 소원 기억나? 선물로 별을 달라고 했잖아. 각자 하나씩이었다가, 둘이 하나였다가, 그러다 결국 산타 할아버지가 없는 걸 깨닫고는 각자 나름 별이랑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지. 실은, 이젠 별에 닿지 못해도 지금에 만족해. 꼭 하늘에 있는 것만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거든. 음… 이게 뭐라고 쓰기도 부끄럽담. 네가 이곳에 오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내가 사랑하면 모두 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를 정말 좋아해 주는 사람. 이름은 '아타라'고, 동화를 읽어주는 일을 해.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다정한 사람이야. 가끔 직접 동화를 만들 때도 있어. 언젠가 나를 위해 별에 관한 동화를 만들어줬는데, 너도 들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거야. 그 동화만큼 부드럽고 상냥해. 그는 내가 별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아, 연애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지? 원래 말하려던 건 그래서 어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지, 였는데 어쩌다 보니 삼천포로 빠졌네. 나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다정한 아타라씨와, 상냥한 이웃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어. 트리 장식물은 우찬이가-우찬이는 옆집에 사는 조각가야. 귀여운 동생이지!- 깎았고, 트리가 될 나무는 상록 씨가-나무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고 있는 멋진 이웃이야!-골라줬어. 물론 나무를 베지 않는 선에서 하려고 위치도 아주 아주 신중하게 골랐고말고. 그래서 나는 나무로 만든 별에 보석을 박는 작업을 하고 있어. 도시에서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내니? 혼자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마음 같아선 어릴 때처럼 훌쩍 업어서 데려오고 싶지 뭐야. 아, 소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마음에 들면 좋겠다. 이를지, 늦을지 모르겠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네 답장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널 사랑하는 에스텔.
Ps. 우리 어렸을 때 썼던 크리스마스 카드들 다 어디 갔지? 네가 가져갔던가, 아니면 나한테 있나? 그것도 아니면 버렸나?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데 그쪽도 한 번 찾아봐 줄래?
에스텔은 마무리 지은 편지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봉투에 넣어 소포와 함께 포장했다. 조그마한 상자 안에 만년필이며 직접 만든 팔찌를 넣고 편지를 가장 위에 얹으니 너무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상자가 꽉 찼다. 크리스마스 소포를 부치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마는, 정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었다.
다만, 에스텔은 아타라와 함께 별을 보며 이브를 보내고, 크리스마스를 맞는 일이며, 서로의 크리스마스를 제일 먼저 축하해주는 일, 다 같이 선물을 나누어 가지는 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고 와인을 마시며 지난 한 해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것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더라도.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고통이 되는 것은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았다. 설사 보인다고 하더라도 외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을 알고 있음으로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소리 내 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타라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내년에도 돌아오는 별을 같이 봐요."
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하늘은 온통 별. 별. 별.
별이 가득했다.
루카 Luka
2020. 8. 30.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