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으로 시작해 체념으로 저물었다. 이제는 다정해진 체념 앞에서 에드워드는 곧 사랑으로만 살아가게 될 날을 상상했다. 사랑 없이는 죽음인 삶을. 그는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의 연극처럼 비현실적일 것이다. 혹은 지금과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 그게 아니라면 어느 부분은 다르고 어느 부분은 같을 것이다. 실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삶으로 발을 디디는 것뿐이다. 예컨대 네가 있던 세상에서 네가 없는 세상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공포 앞에서 솔직했던 적이 없었으므로 지금만큼은 두렵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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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종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것은 여상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날은 달랐다. 에드워드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가까웠고 아직 살아있었으니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에 익숙했다.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원하던 원치 않든,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무언가를 잃어갈 일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건 그런 위치에 있으니 누군가 죽는 꿈은 익숙했으나 자신이 죽는 꿈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는 장면을 보았다. 세상 대부분의 죽음이 그러하듯 인상적인 죽음은 아니었다. 언젠가 상상했던 것처럼 흐릿한 존재감이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에 그쳤다. 자신을 위해서 울어줄 사람, 자신을 묻어줄 사람 하나 없는 이 냉엄한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은 각오한 일이었으나 죽은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을 지켜보는 제3의 시선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에드워드는 그의 죽음을 발치에 두고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에 함빡 젖은 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인즈.
내가 죽으면 당신은 영원히 외로울까?
생각을 거치지 않은 질문과 함께 꿈에서 쫓겨나, 꿈속의 하인즈가 진실로 울었는지는 그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쓸쓸한 죽음은 각오한 일이었으나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외롭게 되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으므로. 그는 두려웠다.
남겨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이제 익숙했으나 자신이 누군가를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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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트리에 장식을 단단히 고정하면서 안락의자에 파묻히듯 앉은 하인즈를 곁눈질했다. 크리스마스 새벽부터 뜬 의문은 기념일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불친절한 종류의 것으로,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어 일 년에 단 하루뿐인 날을 망치기 딱 좋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한껏 장식한 트리에 작은 전구가 알알이 달린 전선을 감으면서도, 전원을 연결해 불규칙적으로 반짝이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은 입꼬리를 올리는 일을 좀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에디?"
표정이 어둡네요. 어느새인가 일어나 곁으로 다가온 하인즈가 염려스레 물었다. 에드워드는 그런 그의 섬세함과 다정함을 사랑했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에 맥없이 흔들리며 엇나가던 그를 붙든 것도 어떤 설득과 강요가 아닌 그의 다정함이었음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그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기에는 부끄러움이 따랐을 뿐이다. 타인과의 교류가 적었던 것이 흠으로 느껴질 때는 바로 이런 때였다. 가감 없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
"그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좀 뒤숭숭한 꿈을 꿔서요."
동생 꿈은 아닌데. 뒤를 잇는 답에 하인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무슨 꿈인지 말해보라는 듯한 눈에 에드워드는, 내가 죽은 뒤의 당신이 나오는 꿈이요. 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내가 죽으면, 당신은 영영 외로운 사람이 될까?"
여전히 두 눈은 반짝이는 전구를 바라보는 채였다. 이런 질문에 하인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그는 미지를 두려워했다. 하인즈 역시 그 두려움을 아는 이였으므로 그를 이해 할 수 있었다마는 외면하는 것이 두려움을 피하는 완벽한 방법일 수는 없었다. 차라리 마주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 에드워드를 돌려세워 눈을 맞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피차 마찬가지로 겁이 많은 그는 어째서 이런 다정한 낯을 하는 걸까. 에드워드는 하인즈를 마주 볼 때면 그 다정에 두려움을 모두 고백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전반적인 부분이 괜찮아진 지금도 그런데, 이전엔 그 마음을 어떻게 참았던 걸까. 에드워드는 두려움 대신 사랑을 논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것 같다면, 나를 물어요."
나를 물고 취해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오로지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인간이던 나의 죽음은 당신이 선사해야만 하며, 그 이후의 삶 역시 당신이 내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에드워드는 무의미한 사냥을 관두었으나 지금까지 저지른 짓이 자신의 발목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믿었다.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도 비슷해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하인즈와 함께하기 시작하며 불미스러운 소문과 함께 줄어든 편이지만 원한에 미친 자들은 아직도 차고 넘쳤으므로 에드워드는 아직도 죽음과 함께 걷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사냥을 관두고서도 무기를 놓지 못하는 것은 이 탓이다.
하인즈는 가느다랗던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에드워드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그리고 에디를 안고 그의 애칭을 속삭였다. 포옹하면 눈을 맞추지는 못하지만 마치 그에게도 살아 힘차게 격동하는 심장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머물기를 택한 것들이 흐르는 기분은 상냥하고 잔잔했으므로 포옹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어째서 본인의 외로움보다 타인의 외로움을 염려하는가?
하인즈는 그 이유를 사랑으로 규정했다.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답이 될 수 없었고, 되어서도 안 됐으므로 사유는 사랑이 되었다. 실제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마는, 그 규정은 조금 이기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이기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나. 그래서 그는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기꺼이, 에디."
그러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지금껏 그런 것을 고민했나? 에드워드의 동그란 머리통을 잔뜩 쓰다듬고 그 대답에 자신이 얼마나 감격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은 하인즈는, 기꺼울 뿐만 아니라 영광임을 속삭였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당신은 나와 같은 존재가 되겠지. 그때는 에드워드와 그가 고민하는 외로움. 영영 외로울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겁이 많은 이들에겐 시간이 많이 필요한 법이었으니 영원에 가까운 시간도 짧게 느껴질 것이다. 하인즈는 근거도 없이 믿었다. 아, 말하자면 근거는 역시나 사랑.
사랑이었다.
루카 Luka
2020. 8. 30. 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