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지(With 정도향, 민견)] 좀비 아포칼립스 AU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생존과 귀결되는 세계에서도 우리는 자주 웃었다.
언제부터였더라, 날짜를 세어가며 살아온 날을 헤아리는 것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보름달을 못 해도 열 번은 보았으니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거나, 일 년 즈음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었으므로 지난날을 셈하는 것은 관두고 '그날'을 1년 전으로 가늠해두기로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무릇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가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일 년 전,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 그냥 대학생이었던 문수지와 그 친구들-정도향과 민견-이 무엇을 알 수 있었겠느냐 마는 뉴스에서 떠드는 정보들이나, 소문 같은 것을 이리저리 짜 맞추어 보면 사건의 윤곽은 이랬다. '정부에서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연구시설에서 사고가 났다.' 기이한 것은 전 세계에서 한날한시,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이것까지 참으로 영화 같았다.
'시민들은 모두 지정된 벙커로 대피하고 이동을 자제하십시오…'
안내 방송을 듣고 벙커로 이동하면서도 현실감이 없던 것은 비단 문수지가 안일하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전부 반신반의하며 벙커에서 대기했다. '좀비 바이러스'라니. 이처럼 영화 같은 일이 진짜겠냐고. 기껏해야 죽은 시체가 부패과정의 가스나, 모종의 이유로 움직인 것으로 유난을 떠는 것이라고. 그러나 뉴스를 통해 방송되고, 그때까진 망가지지 않은 인터넷을 통해 드러난 것은 이지 없는 시체. 그들이 걸어 다니며 폭력적인 성향을 그대로 내보이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통신망이 끊겨가고, 라디오가 유일한 희망이 될 때까지. 문수지를 비롯한 정도향, 민견. 이렇게 셋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벙커 내에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오고, 그로 인해 겨우 서로만을 붙들고 도망치던 와중에도 문수지에겐 모든 것이 꿈같았다.
그래서 더 다행인지도 모르지.
아마 벙커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셋뿐일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하기엔 그들은 그저 범인凡人에 불과하지 않던가. 물론, 이건 문수지만의 견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줄여서 이젠 좀비라고 부르기로 하자. 좀비들이 비와 습기에 약하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조금 더 살만했다.
텅 빈 편의점에서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털어 챙길 때도,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다닌 다음 날, 감기에 걸려 약국을 무단 점거 한 채로 약을 뒤적거리고, 문득 문을 연 병원이 없음을 깨닫고 선득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세상이 이 지경 이 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이 아닐까. 아니면 옛날에 유행했던 몰래카메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뭐. 아무렴 어때. 앞에서 말했듯, 살아남은 날보단 살아남을 날이 더 중요한 세계를 살아가는 일이란 진지한 감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법이 아니던가. 문수지는 깡, 손에 든 야구 배트를 바닥에 두드렸다. 청명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았으나 아침을 알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