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itcrab's Blank Pages
[소다민] 이름 본문
그는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방기했다. 알코올이나 카페인 따위에 의존하는 것만 보아도 엉망진창이었는데, 그런 삶을 겨우 두 가지로 유지한다는 것도 나름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담배는 번거로운 데다가 냄새를 견딜 수 없다는 점, 약은 뒤끝이 더럽고 의존성에 비해 구하기 어렵다는 탓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들과 달리 알코올과 카페인은 부러 애쓰지 않아도 이곳저곳에 널려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소다민은 입이 비뚤어져도 저녁이라 말하기 어려운 시간, 어두운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민은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공과 머리를 살려서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며 빚을 갚을 기회를 가질 수 있던 것을 보면 분명 그랬으므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함이 맞을 테다. 하지만 어째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지. 되려 제 삶이 삶처럼 느껴지지 않고 무감한 탓인지 가끔 가진 모든 것을 진창으로 처박고 그 바닥을 딛고 서야만 그제야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술 따위에 나약한 정신을 의탁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어질러보지만 아, 역시나. 보잘것없다. 그저 쓰레기 같은 인생의 핑곗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정뱅이의 진실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민은 따라놓은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생수병을 꺼내 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 구역질이 났다.
그러고 보니 언제 산 위스키더라. 기억에 없는 것을 보니 언젠가 선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숨을 참고 물을 넘기고서 슬적 모니터 앞의 병을 보면, 역시나. 사지도 않은 술이 남았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텁텁한 입 안을 씻어 내고 싶어 다시금 물을 마시면 잠시 머리가 맑아졌다가, 이내 어지럼증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 어쩌면 나는 해변에 누워 파도를 맞고 있는지도 몰라… 어디서 왔는지 모를 파도가 나를 멀리, 멀리 쓸어내려 가도록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 같았다. 다민은 조금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 앞의 병과 잔을 치웠다. 남은 술은 장식장에, 컵은 바로 설거지해 뒤집어 둔 뒤 다시금 모니터 앞에 앉았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으나 눈이 따가웠다. 모니터를 오래 바라봐야만 하는 일을 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나마 일말의 위안이 되는 것은 소리 내 부를 이름이 하나쯤은 남았다는 사실이겠지. 저장된 번호도 몇 없는 핸드폰을 모로 바라보던 다민은 이름을 슬쩍 손가락으로 문질러보았다. 무게감 없이도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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