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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crab's Blank Pages
그러니까 알고 싶어 수면 아래 가라앉은 이야기나 잠들지 못한 밤의 사연을 숨쉬지 않는 법이나 속삭이지 않는 법을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어느 날 잃어버린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지 사랑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가는지 근처에 온다면 내게 알려줄래?
죽지 못한다면 사랑 하지 않는 법을 알고 싶었다 앎이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생각의 아래를 다시 생각, 생각하고 다시 나는 생각하고. 다시금 사랑을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 포기하고 싶다고 낯선 길을 걷는 사람처럼 더듬거리는 발 끝과 혀 끝과 말단의 모든 것이 어설프다 무엇도 죽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했으면, 때때로 자주 혹은 매일 소원처럼 쌓아올린다
20200420 냉기에 손끝을 물리면 그 자리가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처럼 꼭 한뼘의 간격을 두고 아려온다. 나의 한뼘과 너의 한뼘이 얼마나 다른지는 너와 나를 우리로 부르던 시절에도 알지 못하였다 유난한 숫자 아래서만 냉기가 냉기로서 불리우던가 오로지 내게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있다. 유난한 숫자 아래의 우산 아래의 우중雨中의 네가
20200131 나는 언어 속에 고립되어 간다 모두가 말과 말 사이를 건너 여행하고 있는데 나는 문자와 문자 사이를 뛰어넘는 것이 두려웠는데 타인의 말은 오색찬란한 오로라를 닮았는데 내 것은 흑백의 모노톤을 벗어나지 못하고 값싼 흑백 텔레비전에 나오는 우스운 광대마냥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불거리는 사람들 가장 고조된 순간에 가장 낮은 곳으로 가는 법을 알고 있어요 종착지는 먼 곳의 해구 당신의 해구
20160925 아득하게 높아 오르기 힘든 우리 집 신발을 단단히 조이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땅으로 돌아가기 힘든 길 대신, 꼭 나만한 방에 누워 책으로 쌓은 벽을 홀로 바라보며 저기 어디쯤 있을 별을 손으로 짚어가며 지새우던 깜깜한 자리에 누워 죄가 많아 잠들지 못하는 별을 보며 지새우던 밤
20160912 너를 땅에묻고 떠난 머언 길 철 없는 아이처럼 와악 소리를 지르던 잎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눈 먼 고양이처럼 조용히 서걱거리던 서리가 먼 별로 돌아가고도 어느 곳도 어느 것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풀벌레 잠든 밤에는 너 없는 풀무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