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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crab's Blank Pages
루시 “ 가끔은 증명 할 수 없는 것이 생을 아름답게 하잖니. ” 화사한 금발은 연구소랑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주장하는 바로는 그랬다. 이런 금발을 가진 인물들은 주로 파티장을 누비거나 아주 대단한 부잣집에서 멋진 일들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력한) 주장이었으나 연구소에서 태어나 그 안의 것만 학습하던 그에겐 먼 이야기었다. 겪어보지도 않은 삶을 꿈꾸고 쓸데없는 낭만과 운명에 젖어 무게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이 취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쁘장한 금발을 아끼는 한편 언젠가는 그것을 성의 없이 썩둑썩둑 잘라버렸다. 정말 아끼는것이 맞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무심히. 머리카락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잘라내는 사람처럼. 머리칼을 치렁치렁 기르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짧아지는..

세실리아 유스티나 카렌이 셋을 세워두면 세실리아가 시작이고 유스티나가 끝(혹은 그 이후) 카렌이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음. 뭔가 복잡하고 철학적인 비유가 아니라 세실리아는 뭔가… 이제야 시작한 느낌, 유스티나는 이미 연구의 결실을 봤지만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했음. 사실 깊은 목적을 가진 학자라기보다는 세상을 탐구하는 일이 즐거운듯카렌-세실리아는 기본적으로 탐구를 즐거워 함. 그런 캐임.유스티나는… 머리랑 재능은 타고 났는데 세상을 탐구하거나 알아가고자 하는 지식욕은 없음. 필요에 의해서 연구했고, 그냥 그게 잘 하는 분야니까 계속 해왔다고 생각. 그리고 그게 수단이 되었고… 생명 창조와 함께 모두 연소 된 느낌?반면에 카렌-세실리아는 근본적으로 탐구 자체를 즐기고 그걸로 뭘 하겠다는 큰 포부는 없음. ..
세상이 이런 식으로 멸망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땅이 꺼지고 운석이 떨어지는 등 물리적 손실이 동반하는 종말보다는 비현실적이라 사람들은 종종 종말의 존재를 잊었다. 마치 외출 전 켜둔 형광등처럼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본격적으로 이변을 감지한 것은 세계 곳곳에서 본인이 잊혔노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지 1년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본인이 잊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자, 학계에서는 집단 정신병의 일종으로 보고 그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중세에 발병한 무도병과 같은 것이 아니냐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모순은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다. 본인이 유명 연예인이었다고 말하며 방송국을 찾아온 사람은 그 방송국에 보관된 영상 기록물들을 증거로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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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릴 때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여 끝내 강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상상한다. 우리로서는 차마 막을 수도 없고, 흐름을 뒤틀 수도 없는 것과 범람한 강 위를 떠내려가는 잠든 오필리아의 모습 같은 것을. 그러나 죽음을 전시 당한 오필리아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니 오필리아는 정말 오랜 잠을 청하는 것이 분명하다. 강이 아무리 범람한다 한들 그녀에겐 좁은 곳이 아니던가. 강이 그녀를 싣고 바다로 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아케론의 뱃사공인 카론은 장송곡과 닮은 것을 흥얼거린다. 그녀를 보내주오, 꿈꾸는 그녀를 이제 그만 놓아주오. 뱃사공은 잠든 오필리아에게, 혹은 잠든 세상에게 속삭인다. 이를테면 폭우와 오필리아는 이보다 거대한 존재의 꿈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오필리..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 20210925 체스터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화마에 관한 상상을 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환하게, 무엇보다 환하고 뜨겁게 타오를 화마. 인간의 힘으로는 차마 죽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카멜리는 마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으며, 어쩌면 카멜리가 원래 세계에서 살아갔더라면 이루어졌을 미래의 한 갈래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린에서 밀레시안이 된 그 순간부터, 혹은 여신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부터 요원한 일이 되었음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에린에서 마법을 배우는 일도 어쩌면 마녀가 되는 일의 일부겠지만, 그 행위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바로 소원을 이루는 법. 에린의 마법은 허공에서 불덩어리를 만들어낼지언정 죽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