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itcrab's Blank Pages

[카렌 아처] 무제 본문

1차/etc.

[카렌 아처] 무제

루카 Luka 2024. 8. 5. 21:47

 

0601

 

 

이따위 세상에선 더 나은 것을 바라보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카렌은 해방군이지만, 해방군은 모두 그와 같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는 해방군이지만, 지령을 수행하지만, 그 전부가 옳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이건 형장에 서기 전 변명이 되려나. 아니, 변명이 된다면 말하지 않으리라. 결국 선택한 것은 자신이며, 실행에 옮긴 것도 자신이다. 어떤 것도 해방이라는 이름 앞에 정당할 수는 없었다. 황실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 일이 정당해지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 죗값을 치르더라도 지금 카렌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기디온과 눈을 맞춘다. 북부의 눈을 닮은 백색 눈동자. 그는 알지 못하는 전투로 얻었을 흉터. 말했던 대로 북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빛의 머리칼과… 진실된 시선을.

"저도 생각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경도 저를 '아처'라고 부르시면서. …따로 원하시는 호칭이 있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러 유치한 일로 끌고 내려온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될 것 같았다.

"배울 것은 선택하게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앞에서 조심하셨어야죠. 예. 후회 안 합니다. 언젠가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 어떤 실패는 성공의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레드메인 경."

 '아시겠지만' 하고 덧붙인다. 아는 체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제 경우에는… 행동의 이유를 말해주면 됩니다."

언젠가 가족의 말에 모두 이유를 붙여댄 일이 떠올라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는다. 웃는 얼굴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눈을 맞추고, 진심이라고…. 다른 사람에게도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워낙, 사람을 믿지 않으려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더 진정성 있을지 바보 같은 행동일지는 모른다. 카렌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있는 본인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저는… 레드메인 경의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믿지 못했던 걸까. 카렌은 그때의 자신을 추측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며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 탓이다.

출처: https://hermitcrabsbp.tistory.com/114 [Hermitcrab's Blank Pages: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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