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itcrab's Blank Pages
20240428 일 년 동안 본문
이제 보니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많은 글을 썼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맺지 못해 완성된 글은 없지만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를 써보려고 노력하며 깨닫게 된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내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기록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시작은 훨씬 오래전이겠지만 인상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어쩔 수 없이 ‘암’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
작년 이맘때 즈음 암 판정을 받았다. 갑상선 암이었다. 재작년 겨울부터 고개를 뒤로 젖히면 목에 툭 튀어나온 무언가가 만져지기 시작했는데, 검사 끝에 악성종양으로 밝혀진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이상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이상하니까. 갑상선 암은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암 중에 가장 가볍고 예후가 좋은 것이라지만 어쨌든 암 아닌가.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생각은 많았다. 어디다 말하고 싶은 마음 반, 그냥 말하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반.
세상은 권선징악의 원리대로 굴러가지 않는다지만 내가 살면서 잘못한 일이 암이 되어서 나타난 것 같았다. 어째 착한 일은 돌아오지 않고 나쁜 일은 돌아오는 식으로. 사람인 만큼 잘못한 일이 없지도 않고, 인간관계에 있어 잡음이 많았던지라 잘못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는 못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또 여러모로 말이 애매해질 것 같아서 덧붙이자면 타인의 나쁜 일이 그들이 잘못했기에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나에게만 징악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기저에 깔린 ‘어쩌면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는 좀처럼 지우기가 어렵다. (물론 평소의 나는 이 생각과 힘껏 싸우며 산다. 정말로.)
하여간, 그 시기 전후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인간관계 전반이 무너지고(늘 있던 일처럼 보이지만 개 중 조금 컸다.) 무너진 인간관계를 감당하지 못해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다 또 다른 인간관계가 망가지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시기. 새삼스럽게도 내가 인간관계에 더딘 면이 있다는 것을(내 하자가 좀 크다는 것을) 실감한 계기이기도 했다.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과 한 몸처럼 살아 내가 우울한 줄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변명하고자 적은 것이 아니라 몰랐다는 사실을 적었을 뿐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우울한 사람이 주변에 끼치는 악영향을 모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러게요, 제가 잘못했네요. 라고 대답하겠지. 그게 사실이니까. 뭘 어떻게 해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더 우울했고, 한편으로는 우울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도록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냥 실없는 소리, 웃긴 소리나 하고 싶었다. 웃긴 사람이면 됐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더 깊게 사람을 사귀고 싶지 않았고, 뭔가의 호의를 받는 일조차 두려웠다. 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의미 있고 싶지도 않았다. 글 쓰는 일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고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억할 만한 여지가 없었으면 해서 타인에게 향하는 관심을 끊었다. 주변인들이 만드는 이야기가 더는 궁금하지 않았고 그 사람도 궁금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거나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메마르고 폐쇄적인 시기였다.
아무래도 암 수술 전후로 기력이 쇠한 것도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수술 후에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고, 방사성 치료를 하느라 몸이 많이 고됐다. 부작용이 심하더라. 죽은 듯이 삼일 꼬박 잠만 자며 악몽을 꾸기도 했다. 건강도 인생도 인간관계도 정말 전부 때려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런 시기에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친구들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괴롭다고 말하면 그렇구나, 말해주는 친구.
물론 ‘멘헤라’ 상태가 지속되면 나가서 운동해라, 산책해라,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너 지금 멘헤라야, 이야기 해주어서 이젠 땅 좀 판다 싶으면 알아서 기어 나오는 눈치가 생겨서 더 많은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미안.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많은 것을 잃었지만 오로지 잃기만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잃었다고 표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이제껏 그래왔듯이 내 자리를 지키고 버티면 괴로움도 상실도 외로움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 오래 머물러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겠지. 나는 그런 순간을 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 년이나 지나서야 할 수 있게 된 생각이다. 들춰보는 일이 두려워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던 생각을 이제서야 꺼내보고 그래, 별거 아니잖아. 하고 자기 위안이나 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더 나빠질 수 없는 것은 나아질 일만 남은 것과 같으니까. 내가 무언가 계속하려고 하는 한 느려도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괜찮다.
전부 괜찮을 것이다.
+ 누군가를 저격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적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적는 것조차 누군가를 저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의도는 없다.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순간이 진짜 진짜 싫다.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곰돌이 귀도리 (0) | 2024.11.27 |
---|---|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0) | 2024.11.11 |
20230915 (0) | 2023.09.15 |
내가 광공의 아방수? (0) | 2022.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