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itcrab's Blank Pages

최후의 오필리아 본문

1차/단문

최후의 오필리아

루카 Luka 2021. 11. 8. 04:48

비가 내릴 때면 걷잡을 수 없이 범람하여 끝내 강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상상한다. 우리로서는 차마 막을 수도 없고, 흐름을 뒤틀 수도 없는 것과 범람한 강 위를 떠내려가는 잠든 오필리아의 모습 같은 것을. 그러나 죽음을 전시 당한 오필리아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니 오필리아는 정말 오랜 잠을 청하는 것이 분명하다. 강이 아무리 범람한다 한들 그녀에겐 좁은 곳이 아니던가. 강이 그녀를 싣고 바다로 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아케론의 뱃사공인 카론은 장송곡과 닮은 것을 흥얼거린다.


그녀를 보내주오, 꿈꾸는 그녀를 이제 그만 놓아주오.


뱃사공은 잠든 오필리아에게, 혹은 잠든 세상에게 속삭인다. 이를테면 폭우와 오필리아는 이보다 거대한 존재의 꿈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오필리아는 미쳐버린 가여운 여인이 아닌 그저 오필리아가 되기를, 기억도 하지 못할 먼 옛날 인류에게 프로메테우스가 선물한 태초의 불이 되어 영원히 타오르기를. 허나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 마땅한 일은 그렇게 될 것이다. 운명은 부재하나 욕망은 실재하므로. 이 폭우가 그칠 때 즈음, 범람한 강을 따라 바다에 도착한 오필리아는 욕망할 것이다. 같잖은 흐름을 거스를 것이다.

'1차 > 단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라리스 & 루시  (4) 2024.11.15
가내 학자 관련 썰...  (0) 2024.11.12
20241010 종말  (0) 2024.10.10
이런 짓이 허락될 리 없어  (0) 2021.12.20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0) 2021.09.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