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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1 스포/톨비밀레] 시작과 끝

루카 Luka 2020. 12. 12. 07:46

[G21 중요 스포일러 포함]

 

해당문구는 미리보기를 통해 노출되는 것을 줄이고자 작성 되었으며 하단의 내용과는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20201212 작성 되었으며 어쩌구저쩌구 이제 충분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대충 적어봅니다 왜 이 아침에 이러고 있는지 쓰고 싶던 내용은 코딱지만큼 썼는데 글이란 원래 그런건가 봅니다...

 

 

 

 

 

 

 

 

 

 

 

 

 

 

 

 

 

카멜리가 걸어온 길은 처음 자신을 안아준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콕 집어 특정하기 어려운 순간부터 그곳에 존재했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발 디딘 세계를 사랑했다. 이방인의 이름인 '밀레시안'으로 불려도 세계를 사랑할 구석은 충분했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티르 코네일의 소박하고 다정한 사람들과 작은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며 저 멀리서 마차가 들어오는 아담한 숲 터널, 양들이 우는 저녁, 보리와 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언덕 너머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까지… 어느 것 하나 정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전설이나 옛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시작은 사소하고 아주 작은 속삭임으로부터 비롯했다. 그 속삭임이 카멜리로 하여금 세상을 구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을 지키고자 결심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지킬 수 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걸어온 길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으나 그녀는 여전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했다. 하면 할수록 늪으로 빠져드는 상념인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멜리는 한때 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쫓아 시드 스넷타로 자주 걸음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극에 가슴 깊이 슬퍼했고, 그 비극을 덜어낼 방법을 누군가와 논한 적이 있다. 낙원에 대한 희망을 품은 세 용사의 이야기를 가장 오랫동안 곱씹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녀일 것이고, 그들의 최후의, 최후의, 최후와… 마지막 기회까지 지켜보면서도 살리지 못한 것도 그녀일 것이다.

카멜리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북쪽에서 비롯했다.

차가운 바람을 타고, 녹지 않는 눈송이를 싣고 온 속삭임에서.

그곳에 아무도 없을 것을 알아, 돌아보는 것마저 꺼리게 되는 그곳에서.

언젠가 밤을 기다리며 앉아있던 숲에서.

지독히도 시리던 운명에서.




'이야기 속의 영웅은 마지막까지 영웅이어야 하네… 그 뒤의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지 않나? 차라리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카멜리는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수순으로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은'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촌장님은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아마 세 영웅의 처음도 이런 끝을 예상하진 않았을 텐데.

영웅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죽음과 함께하는가?

죽은 자만이 영웅으로 남는가?

그러나 카멜리는 영웅이 되고자 한 적이 없었으며, 그저 할 수 있기에 지키고자 했을 뿐이었다. 밀레시안이 아니었더라도 아끼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 테지만 힘이 있으니 영웅으로 불렸고, 이용당했고, 배신당하고, 때론 잔혹한 운명의 말로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카멜리는 몇 개 되지도 않는 마나 허브를 챙겨 북쪽으로, 어두운 북쪽 숲으로 향하던 때가 그리웠다. 사람의 진심을 믿던… 한 치의 의심 없이 다정하고자 했던 때를.




카멜리는 죽지 않았고, 여전히 영웅이었고, 여전히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그녀를 찾았다.

기사단과 만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으나, 유례없이 독특한 이들과 만나게 된 것도 그 덕이었다. 다른 이들과 똑같았더라면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하고 그저 스쳤을 터지만, 그녀는 기사단에게서 익숙한 것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어디서든 정 붙일 것을 찾아내고 마는 그녀에게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이방인의 흔적이란. 자신을 깎아가며 타인을 지키는 것에 가치를 두는 이들의 걸음이란… 어쩌면 그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물증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

그저 그것을 위해 숨죽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이들.




톨비쉬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을까. 

기사단을 만난 시점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개울에 떠내려오던 펜던트를 줍게 된 것처럼 만들어진 운명이래도 이미 벌어진 일은 돌릴 수도 없는 법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덧붙이고 곱씹어도 아무래도 좋다는 말이 가장 걸맞았다. 돌릴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고, 그것에 매여있기에 그녀는 너무 지쳐버렸으므로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말에 기대고 싶어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아닌가. 수십, 수백, 수천 번을 죽고, 또, 죽고… 또 죽음에서 돌아오며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고통이 두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래, 두려웠다. 칼에 찔리고 매서운 활이 몸을 관통하고 거대한 발에 밟혀 뭉개지는 몸과 찢어지는 살갗 태워지거나 얼어버리는 감각 그 전부가 지겨운 동시에 여전히 두려웠다. 때로는 이미 사라진 영웅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았냐고. 오로지 신념을 지표 삼아 걷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냐고.

그리고 익숙하고도 외로운 전장에서 영원토록 바래지 않을 황금빛 머리칼을 가진 이가 카멜리에게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을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제가 당신과 함께하겠'다고.

카멜리는 바라는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그런 말을 기다린 사람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벅차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위해 목숨을 걸던 시절과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설명하면 될까. 아, 아마도 그와 같은 순간은 오지 않겠지. 그들이 모두 추락하여 죽음을 맞더라도 그 순간의 빛만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주 지독한 악몽에서도 건져 올려진 것을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




동시에 카멜리는 생각한다. 당신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관을 준비하고, 성소의 문을 걸어 잠그며, 엿본 미래에 절망하여 전부 포기하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당신이 잠들었어야 할 관 앞에서, 내게 칼을 꽂는 심정은 어떠하였냐고. 수십번 당신에게 난도질당하는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냐고.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라서… 내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한 것은 어떤 의중이었느냐고. 내가 좋다는 말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 나를 믿고 신뢰해서 이 거대한 청사진의 일부를 나로 메꾸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게 아니면 내가 보여준 미래가 그토록 참혹하여 견딜 수 없던 것인지.

당신이 다정했기에 나의 상처는 그토록 크고 깊다. 마지막까지 혼자 두지 않겠다 맹세한 것을 의심 없이 믿어버린 대가란 그런 것이다. 당신이 끝의 끝까지 악하게 굴었더라면 배신감에 몸서리라도 치며 욕하고, 울고, 저주를 퍼부었을 테지만 결국은 과오를 바로잡기로 했지. 그래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도 못한채로, 저주도 없이, 그저 모든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떨었다. 가장 약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러다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도 시들지 않고 풍요로운, 한때는 당신의 요람이었고, 언젠가는 당신의 무덤이 되어야 했을 곳. 끝내 홀로 봉인을 마치고 방랑하였을 당신을.




혹시, 마지막 순간에 나를 홀로 두지 않겠다던 그 맹세가 앞으로도 유효하다면….



내가 진정한 수호자라고 말하던 당신은 한결 편안해 보였던가. 그러나 톨비쉬, 당신은 내가 마냥 선한 사람이 아님을 새겨야 할 것이다. 모든 고통에 발 벗고 나서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임을 재차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호자라 불리어도 좋다면, 그렇다면.

지키고자 마음먹은 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리라.

그것이 당신이 믿은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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